수입 0원, 내 생애 가계부를 처음 써봤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 어느 날 갑자기 월급이 끊기고, 매달 고정 지출만 남았을 때 “이대로 몇 달을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런 상황이었다. 40대 중반, 6년 다닌 직장을 떠나고 3개월간 무직 상태로 지냈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4개월 차에 통장 잔고가 100만 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현실 자각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나는 ‘무직자 가계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산은 한 달 30만 원. 하루 약 1만 원 이내로 살아보기로 했다.
이건 단순한 소비 통제가 아닌, “나는 내 삶을 아직 통제할 수 있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한 심리적 생존 기록이었다.
가계부는 내게 돈을 관리하는 도구가 아니라, 심리적 균형을 지켜주는 안전망이 되어주었다.
무직자의 가계부는 ‘돈’보다 ‘의지’를 관리하는 도구다
첫째 주는 비교적 쉬웠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3일치 반찬을 한 번에 준비하고,
커피는 포기하고 대신 티백으로 대체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으면 최대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약속을 정하고 되도록 걸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톡 튀어나온 아랫배가 들어가지는 느낌이 들며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하루 지출 평균 9,800원. 예상보다 선방이었다.
하지만 둘째 주부터 위기가 왔다.
지출을 줄이면 줄일수록 오히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자괴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약속을 아예 만들지 않고, 편의점도 피하게 되고, 커피 한 잔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가계부에 ‘0원’이라고 쓰는 날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더 공허해졌고, 어느 날은 지출 항목을 적지 않고 덮어버린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째 주에는 다시 마음을 붙잡았다.
가계부를 그냥 ‘지출 정리 도구’가 아니라, 하루를 돌아보는 정리 노트처럼 쓰기 시작했다.
‘오늘 장을 보러 갔다. 바나나가 할인 중이라 1,800원에 샀다.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지출에 '한줄 감상'처럼 붙이기 시작하면서, 가계부는 심리 일기로 바뀌었다.
돈보다 ‘나’를 돌아보게 된 기록의 힘
넷째 주에는 특이한 일이 생겼다.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지 25일째 되던 날, 한 지인이 **“요즘 생활 어떻게 하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내가 써온 가계부 내용을 일부 공유했고,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거 블로그에 올려봐. 요즘 그런 거 다들 좋아해.”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그냥 글을 하나 써봤다. 제목은 ‘무직자의 하루 1만 원 생존기’.
그리고는 부끄러워 다시 글을 내렸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고 누군가 나를 알아볼 것 같은 창피함이 들었다.
나의 지인은 그 상황을 이겨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나를 독려했다.
내가 ‘고작 1,800원짜리 바나나를 사며 기뻤던 이야기’에 댓글이 달리고, 응원의 메시지가 오는 것을 꿈꿔 본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필로 기록하면서 나는 알게 됐다. 무직자라도 무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건, 내 기록이라는 사실을...
글을 쓰면서 묘한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파워'가 생기는 느낌....
이 모든 출발은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됨을 알고 있다.
무직자의 가계부는 돈보다 중요한 걸 남긴다
무직자가 가계부를 쓰는 일은 단지 ‘생활비 관리’가 아니다.
그건 나 자신의 통제권을 회복하는 행위이고,
더 나아가 **삶을 기록하고, 방향을 다시 정비하는 ‘정신적 회복 루틴’**이 된다.
사람들은 “돈이 없는데 뭘 기록하냐”고 말하지만, 오히려 돈이 없을수록 기록은 더 필요하다.
지금 무직 상태라면, 돈 걱정보다도 자존감이 먼저 무너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하루에 9,800원을 쓰고, 그 내역을 적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절대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아직 스스로를 놓지 않은 사람이다.
무직자의 가계부는 숫자보다 의지,
금액보다 일상의 의미, 소비보다 자기 존중감을 담는 그릇이다.
하루 1만 원으로 살아도 괜찮다. 그 하루를 기록하는 당신은 충분히 멋지고 단단하다.
그리고 그 기록이 언젠가는, 지금 이 무직의 시간을 가장 값진 성장의 시기로 기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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